오늘 이렇게 교수님을 추모하는 글을 써야 하니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비통하고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교수님께서는, 1963년 3월부터 40년이란 평생을 오로지 대학의 교직에 몸담아 봉사하셨고, 더구나 1957년에 부산대학에 입학하신 것부터 따지자면 부산대학교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 간의 기나긴 세월동안 겪으신 노고와, 쌓으신 업적을 어찌 이 짧은 글에 백분의 일이나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교수님께서는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분야를 선택하여 학문의 뜻을 같이하는 선배・동료 학자들과 함께 국민보건의 향상에 괄목할 만항 성과를 이루셨습니다.
교수님의 전문적인 학문영역에서 보면 90편에 달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하셨는데 특히 각종 기생충 질환에 있어서 β-glucuronidase의 활성치에 관한 많은 업적을 남기셨고,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 기생충질환의 역학적 조사, 특히 간흡충과 아니사키스에 관한 많은 논문을 쓰셨습니다. 간흡충(간디스토마)에 관한 연구는 세계의 어느 석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며, 특히 낙동강 유역의 간흡충 감염 및 역학에 관한 연구보고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인정할 만큼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때 기생충감염의 퇴치가 중요한 과제이었으며, 부산 경남 일대에서는 교수님께서 직접 이 일에 주역을 담당하여 불철주야 뛰어다녔습니다. 20여년전 미국Lowell종합대학 열대의학연구소 유학을 시작으로 많은 국제 학회에서 주제발표와 학술교류를 해오심으로써 학문의 경륜을 많이 쌓으셨기에 오늘에 와서 교수님의 연구 논문들이 많이 읽히고 인용되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교수님의 연구업적은 지역사회에 대해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되며 기생충학의 위상을 높여왔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외유내강의 기품을 지나셨으며, 1963년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에 무급조교로 입실하신 이래 1986년부터는 주임교수로서 기생충학교실의 튼튼한 기틀과 학문적 업적과 전통성을 세우셨습니다. 후학의 지도에도 한치의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교수님의 각고의 노력으로 1991년 이래 13명의 박사를 지도하여 배출하셨고, 또한 31명의 석사를 배출하시는 등 그동안 수많은 제자를 키우시고 훌륭한 후학을 양성하셨으니 당연히 젊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기생충학회 감사 및 부회장을 역임하여 학회와 기생충학잡지의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큰 이바지를 하셨습니다. 또한 진례학원 이사장까지 역임하여 대학교육 뿐만 아니라 고향의 후배 양성에도 정성을 다 하였습니다.
교수님의 가르침을 더 받아야 할 부분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은데 교수님께서는 이미 멀리 떠나가셨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을 잃은 슬픔에만 감겨 있는 것도 교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평소의 가르침을 가슴에 지니고, 제자로서, 후학으로서 교수님의 뜻을 이어 나감에 게으름이 없도록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삼가 교수님의 명복을 비옵니다.
부산의대 기생충학 교실 동문일동